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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기술자 이근안, 텅 빈 빈소 속 1시간 일찍 발인… 과거사 논란 속 마지막 길

View 12 2026. 3. 2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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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근안 전 경감, 텅 빈 빈소 속 발인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고문하여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았던 이근안 전 경감의 발인이 예정보다 1시간 이른 오전 5시 20분에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유족의 요청으로 이른 시간에 발인이 이루어졌으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고 이근안은 최근 건강 악화로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문 기술자'의 어두운 과거

1970~19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했던 이근안은 남민전 사건, 김근태 민주화청년운동연합 전 의장 고문 사건 등 주요 공안 사건을 수사하며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했습니다. 전기고문, 물고문, 관절뽑기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사실이 알려지며 '고문 기술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당시 민주화 운동 인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과거사 미화 논란과 진정성 의문

민주화 이후 12년간 도피 생활 끝에 자수한 이근안은 납북어부 김성학 씨 고문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출소 후 신앙 간증 활동을 하며 과거를 반성한다고 밝혔으나, '신문도 하나의 예술', '간첩과 사상범을 잡은 것은 애국'이라는 발언으로 자신의 과오를 미화하려는 태도를 보여 피해자와 시민사회로부터 진정성에 대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길은 과거사 논란과 함께했습니다.

 

 

 

 

이근안, 과거사 논란 속 쓸쓸한 마지막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았던 이근안 전 경감이 텅 빈 빈소 속에서 예정보다 일찍 발인했습니다. 그의 과거 행적과 이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와 질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근안 전 경감에 대해 궁금해하실 만한 점들

Q.이근안 전 경감이 '고문 기술자'로 불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A.1970~19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 인사들에게 전기고문, 물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사실 때문에 '고문 기술자'로 불렸습니다.

 

Q.이근안 전 경감은 과거 행적에 대해 어떻게 반성했나요?

A.출소 후 신앙 간증 활동을 하며 과거를 반성한다고 밝혔으나, 자신의 행위를 미화하는 듯한 발언으로 인해 진정성에 대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Q.이근안 전 경감의 발인은 언제, 어디서 이루어졌나요?

A.발인은 27일 오전 5시 20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의 요청으로 예정보다 1시간 일찍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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