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30분, 눈물 쏙 빼놓은 '최양락 단발' 탄생 비화
직장인의 '규격화된 머리'와 은퇴 후의 해방
20여 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앞머리를 세운 리젠트 컷이나 포마드 스타일 등 정해진 규격의 머리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자라는 머리카락 때문에 한 달에 두 번씩 미용실을 찾아야 했고, 커트 비용 부담도 컸습니다. 미용실은 사회적 전장으로 나가기 위한 '정비소'와 같았습니다. 2024년 5월, 동반 퇴사 후 은퇴를 감행하며 가장 먼저 머리카락에 대한 '방임'을 선언했습니다.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장발의 모습이 궁금했고, 사회적 시선이라는 가위질을 멈추면 머리카락이 어디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방임은 2년이 지나 어깨선에 닿았습니다.

장발을 기르며 깨달은 '나'와 '아내'의 닮은꼴
머리를 기르며 제가 지독한 곱슬머리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끝이 말려 올라가는 형태를 보며, 그동안 제 본연의 모습을 얼마나 억누르며 살았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머리카락이 길어지자 바람에 날리는 머릿결을 뒤로 넘기거나 눈앞을 가리는 가닥을 귀 뒤로 꽂는 등, 아내와 닮은 낯선 습관들이 몸에 배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감는 시간도 1분에서 2년 묵은 머리카락을 정성껏 손빨래하는 공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생경하면서도 즐거웠고, 제 몸을 돌보는 시간의 밀도를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해외 살이의 경제적 이점과 '웃음 버튼' 아내
해외 생활에서 장발은 경제적인 이점도 가져다주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지불하던 미용 비용이 거의 들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수확은 아내의 웃음이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긴장하며 살기 쉬운 저희 부부에게, 제 치렁치렁한 헤어스타일은 아내의 가장 확실한 '웃음 버튼'이 되었습니다. 아내 역시 유전적으로 빨리 자라는 '새치'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주기적인 뿌리 염색으로 관리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 미용실에서 민감한 헤어 시술을 맡기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 아내가 현지 미용실에서 첫 탈색과 염색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은 해외 살이에서 마주한 작은 승리였습니다.

3배의 이발비, '용기' 대신 '아내의 가위'를 택하다
크로아티아 자다르로 넘어오면서 제 머리카락은 관리의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현지 미용실의 커트 비용은 한국의 3배에 달했고, 은퇴자에게는 사치였습니다. 그때 아내가 제안했습니다. '내가 잘라줄까?' 꼼꼼하고 신중한 아내였지만, 가위를 든 손을 상상하니 서늘한 기운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거절하기엔 늦은 타이밍이었고, 저는 유튜브로 충분히 공부하고 연습한 뒤에 맡기겠다고 조건을 걸었습니다. 마침내 설날 아침, 베란다 창가에 의자를 놓고 '베란다 미용실'이 개업했습니다.

30분의 사투, '최양락 단발' 탄생과 폭소
약 30분간의 사투 끝에 아내가 '다 됐다!'고 선언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화장실 거울 앞에 섰을 때, 그곳에는 90년대 '알까기' 시절의 개그맨 최양락 씨를 연상케 하는 중학생 단발머리의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정교한 층이나 세련된 질감 따위는 없는, 아주 정직하고 뭉툭한 단발이었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이내 저희 부부는 거대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화가 날 법도 했지만, 거울 속 촌스러운 제 모습이 너무나도 정겨워 눈물이 날 때까지 웃었습니다. 이 단발머리는 20년 동안 '세련된 짧은 머리'를 유지하느라 애썼던 저에 대한 해학적인 보상이었습니다.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 나간 것들, 그리고 얻은 것들
지금 저는 자다르 거리를 '최양락 단발'을 하고 씩씩하게 걷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도, 전문가의 손길로 다듬어진 완벽한 각도도 필요 없는 삶입니다. 아내가 정성껏 잘라준 이 머리카락은 우리 부부가 해외 살이에서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가 되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의 용기, 예기치 못한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여유, 그리고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다정한 시간이 우리 삶에 채워졌습니다. 비록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이 머리카락에는 자다르의 설날 아침 우리가 함께 나눈 찬란한 웃음이 묻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단발머리는 제 인생 최고의 헤어스타일입니다.

해외 살이, 궁금해하실 만한 점들
Q.해외에서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한가요?
A.네, 장발을 기르면 미용실 방문 횟수가 줄어들어 비용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해외에서는 한국보다 미용 비용이 더 비싼 경우가 많아 경제적 이점이 더욱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Q.아내의 헤어스타일링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A.아내는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으로, 유튜브를 통해 충분히 공부하고 연습한 뒤 제 머리를 잘라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점차 자신감을 얻어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Q.해외 살이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A.한국의 편리한 인프라, 익숙한 미용실, 단골 식당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낯선 환경에서의 용기, 예기치 못한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여유, 그리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채워집니다.
